The Harmony
읽고 있는 책 너머로 보이는 맞은편 커플의 흘깃흘깃거리는 시선이 자꾸만 신경쓰여 그 시선을 따라가본다.
그 커플의 눈길은 내 옆의 다른 한 커플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을 받는 커플은 언뜻 보기에 그다지 시선을 끌만큼 특이한 점이 없어 보인다.
굳이 눈에 띄는 점을 찾자면 그들은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동양인이며, 여자는 흑인이다.
앞서 말한 커플은 무어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이제는 아예 대놓고 킥킥대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둘이서 귀엣말을 주고 받으며 맞은편 커플이 자리를 뜰때까지 무례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들이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구경꾼과 같은 태도를 취했던 것이 만약 그 커플의 인종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기껏해야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들일진대 그토록 촌스러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피부색의 다름을 보고 신기해하는 것은 나의 네살배기 딸아이나 할 법한 수준이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나에게는 꽤나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친구들이 있다.
세네갈,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 태국 등 그들은 각자 다른 국가를 기반으로 하며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나,
그들 개개인과 나는 공통된 관심사로 몇시간이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누구가의 유머에 동시에 박장대소를 터뜨리는가 하면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말없이 미소지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었던 듯 하다.
우리의 관계에 있어 다른 피부색은 하등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며,마치 실버와 골드의 조화처럼 컬러는 다르지만
그 다름의 배합이 멋스러운 균형을 이루어내는 관계였다.
몇년 전 한 컬렉션의 모델로 각기 다른 인종의 친구들을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당시 쥬얼리가 잘 돋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벨벳 원단 같은 매끈하고 어두운 그녀의 피부 위에서
실버는 물론 골드는 더욱 은은하고 부드러운 광채를 발하였으며, 갖가지 원석들은 한층 더 이국적인 면모를 드러내었다.
또한 다른 무엇보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물 흐르듯 유연한 몸짓의 결합으로 서로의 컬러를 자연스레 한데 섞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쥬얼리 구성에 있어 실버와 골드의 조화를 꾀하려고 해왔기에,
마치 실버와 골드처럼 어우러지는 그녀들의 조합이 더욱 신선하고도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클래식하되 늘 믹스 매치를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일관된 한가지 컬러나 스타일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서로 다른 컬러와 형태의 것들이 만나 이루어내는 결과물이 예상치 못하게 아름다울때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다.
간혹 실버와 골드 제품을 같이 하면 어색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고객들의 문의를 들을때가 있다.
실은 꼭 정해진 건 없다.
본인의 기준에 영 마뜩잖다면 굳이 억지로 섞으려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컬러가 아닌 다른 것들이 만나 함께 이루어내는 균형과 조화이다.
그리고 시도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결합은 곧 용기있는 시도의 결과이기도 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