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 in the Dark
깊고도 적막한 밤처럼 온통 검푸른 배경의 무대 한가운데서 몸을 한껏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있다가,
이내 기지개를 펴는 것처럼 온 근육을 뻗어 어둠속에서 내 존재를 서서히 드러낸다.
그 뒤로 검은 옷차림의 파트너가 다가와 뒤에서 부드럽게 감싸안듯 내 몸을 받쳐주고,
나는 그의 손길을 자유롭게 넘나들듯 내 온 몸의 곡선으로 휘감는다.
음악의 템포가 점점 빨라짐과 동시에 나는 발끝을 더욱 빳빳이 치켜 세우고는,
더욱 큼직한 포물선을 그리며 무대의 끝과 끝을 유려하게 장악한다.
마침내 클라이막스에 다달아 휘감길 듯한 회오리 바람처럼 '푸에테' 를 선보이며 한 줌의 재가 되어 날아간다..!
*푸에테 : 빠르고 힘차게 턴하는 발레 동작
이윽고 환하게 불이 켜지며 눈을 뜬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찰나의 꿈에서나마 쇼팽의 까멜리아 레이디가 되었던 것이 너무나 강렬하여 여전히 황홀경에 잠식된 기분으로,
그것을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은 지경이다.
허나 내 비루한 몸짓으로 아둥바둥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라도 그 전율을 기념하고자 한다.
'리듬' 컬렉션은 이와 같이 내 환상 속으로 흘러들었던 음악의 곡조와 무용의 실루엣을 크게 반영하고 있다.
그 중 'Dance in the dark'는 짙푸른 어둠 속에서 한마리 불새처럼 춤추는 무용수의 환희를
간접적으로나마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쥬얼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디자인은 어디서, 또는 어떻게 영감을 받고 고안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종종 받곤 한다.
그 모든 것이 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면 퍽 근사해보이련만,
사실은 내 창작물의 모티브가 되는 것 중 거의 절반은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상상의 전유물과도 같다.
수천년 전 고대 이집트 왕비 네페르타리가 늘 지니고 다니던 청금석의 장신구들을 거리낌없이 온 몸에 휘감아 보거나,
튀니지의 튀니지안 블루와 모로코의 코발트 블루, 그 생생하고 압도적인 색감에 둘러싸인 컬러풀한 아프리카를
마음대로 쏘다녔던 일은 내 머릿 속 세계에서만큼은 참으로 생생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늘 자유롭길 원한다.
비록 현실에서는 적지 않은 제약이 있으나, 나의 사상이 구속과 속박에 휘둘리지 않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거리낌없이 유연하다면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나일강 줄기처럼 무한대로 뻗어나가 내 정신만큼은 온전히 자유로워지리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큼은 무한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실로 자유로운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내 디자인도 무한히 자유로워지길 원한다.
그를 위해 내 사고의 문을 가능한 활짝 열어놓고 예상치 못한 것들이 마음껏 침범하도록 하여
그것이 고스란히 내 디자인에 녹아들었으면 한다.
그로 인해 그것을 지니게 될 이들 또한 한껏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