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녹색
태양이 뜨거나 지기 직전, 태양 주변에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그 광선은,
우리가 흔히 짐작하듯 붉거나 노란 색이 아닌 생생한 녹색을 띈다고 합니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자신의 소설 '녹색광선'에서 표현하기로 그 광선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녹색,
어떤 화가도 팔레트에서 찾아낼 수 없는 녹색, 자연이 식물의 아주 다양한 색채는 물론,
가장 투명한 바다의 색에서도 결코 재현해내지 못한 색조라고 하였습니다.
이 환상적인 표현을 읽노라니, 이 녹색 광선이란 도무지 어떤 색을 띄고 있을지 몹시도 궁금해지고 말았습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 '녹색광선'의 주인공 델핀도 내내 녹색광선을 쫒다가 끝내 그것을 마주하게 되는
찬란한 순간을 선사받게 됩니다.
쥘 베른의 소설 속 켐벨도, 에릭 로메르의 영화 속 델핀도 모두 그 황홀한 녹색 광선을 보고자 하는
염원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이쯤 되니 그들이 왜 그토록 녹색광선을 뒤쫒는데 힘을 쏟은 것인지 의아해집니다.
그것은 그 녹색광선이 단순히 신비로운 자연현상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녹색 광선은 바로 "꿈과 희망" 그 자체이지요.그리고 결국 그것을 볼 수 있었던 건 그 두 여인 모두
여러 번의 유혹과 고난에도 불구, 자기 안의 순수성을 지켜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나, 실은 저의 소망 중 하나도 그녀들처럼 녹색 광선을 두 눈으로 목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려왔던 소망은 살면서 볼 일이 몹시 드문 희귀한 녹색 광선만큼이나 아득하게만 느껴질 때도 있었으나,
한없이 바라고 또 바란 끝에 마침내 녹색 광선의 한 줄기 푸른 빛이 비쳐진 것처럼 그 소망이 이루어진 적도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더 푸르고 생생한 녹색 광선을 마주하게 될 순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제가 쫒고 있는 녹색 광선은 부와 명예같은 것들보다 한층 더 획득하기 어려운 것으로서,
바로 아직 다 드러내지 못한 제 자신의 발현입니다.
누군가의 엄마, 딸, 아내로서가 아닌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서 말이지요.
꿈을 꾸는 한 저는 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꿈을 꾸고 소망하는 사람이며, 그로 인해 제 안의 최소한의 순수를 지켜내려 합니다.
꿈을 꾸는 자는 순수하며, 순수한 이는 꿈을 꿉니다.
그 순수성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어디에서도 결코 재현해낼 수 없는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녹색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녹색광선은 처음부터 허상에 불과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태양은 바다와 실제로 만나지 않을 뿐더러, 그 과정에서 발현하는 이 녹색 광선 역시도 굴절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나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결국 우리의 종착점에 다다른 시점엔
그 푸르른 녹색 광선이 사방에서 아득한 빛을 뿜어내며 우리를 온화하게 감싸주리라 생각합니다.
해가 지는 마지막 순간에 발하는 녹색의 반짝임은 우리의 꿈과 희망의 결실이니까요.